>
|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 이병수목사 | 2016-10-16 | |||
|
|||||
|
2016년 10월 16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성경:사사기 16:22-31 제목: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삼손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 보면서 노래를 부른다면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어느 날 난 낙엽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러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은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흘러버린 세월을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오늘 본문은 삼손의 최후 장면이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 1.첫째로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예화)미국 뉴욕 양키스에서 뛰었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 선수가 남긴 명언이 있지요.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 삼손은 9회 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트 상태이다. 패색이 짙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헌데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삼손의 지금 모습은 야구로 말하면 9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 상황이다. 헌데 이다. 패색이 짙은 상황이지만, 삼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끝내기 전까지는 끝이 아니다. 22절의 말씀을 함께 보자.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일하심의 특징을 말씀하고 있다. 머리털이 밀리면 다시 자라는 것은 당연하다. 이발료만으로도 많은 돈이 지출된다. 머리털이 얼마나 잘 자라는지... 헌데 이것을 몰라서 성경이 기록한 것일까요? 아니다. “시작하니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삼손이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다시 시작하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 말을 풀어 보면 ①삼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서 이스라엘의 구원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②육의 눈을 잃고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중에 삼손이 서서히 영의 눈을 뜨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③하나님은 나실인의 영적 권위를 잃어버렸던 삼손이 서서히 영권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시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회복시키시는 분이시다. 지금까지 삼손은 어떻게 살았나? 하나님이 주신 시간, 그 좋은 재능과 능력, 기회를 갖고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삶을 살았다. 눈이 보일 때는 미모의 여인들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눈이 없어지고 나자 이제야 하나님을 보기 사작했다. 몸에 힘이 있을 때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더니, 몸에 힘을 잃고 난 뒤에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다. 몸이 자유로울 때는 여자에게 사로잡혀 여자의 종노릇을 하며 살더니, 온 몸이 청동 족쇄에 묶이자 드디어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아쉬움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잃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불행중 다행은 무엇인가? 삼손은 늦었지만, 잃고 난 뒤에 비로서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 잃었을 때가 기회였다. 삼손은 두 눈이 뽑히고 난 뒤에야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 육신의 건강을 잃고 난 뒤에 비로서 주님이 보이기 시작하는 성도들이 많다. 지금은 상실의 아픔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있는가? 건강을 잃었는가? 물질을 잃었는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었는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다시 보기 시작하라. 상실의 아픔이 크지만, 그 자리에서 주님을 볼 수 있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감사할 일이다. 우리 하나님은 실패의 자리, 고통의 자리. 아픔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끝내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9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라 해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을 바라볼 때 다시 시작하게 하신다. 2.둘째로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성도들의 타락은 하나님의 이름을 짓밟히게 하는 일이다. 블레셋 사람들의 생각 - 자신들의 신이 이기었다고 큰 소리를 쳤다. 23-25절이다. 2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보라. 삼손이 망신당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짓밟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세상 앞에서 부끄럽게 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나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짓밟히기 때문이다. (예화)군에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하극상임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덤비는 것을 보았다. 이유는 상급자가 자신의 부모를 욕되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이 비난 받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자신의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은 견딜 수 없어 하더라. 그렇다. 어느 자식이든 부모님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면 안된다. 내가 비난 받는 것은 상관없다. 허나 나 때문에 하나님이 욕되게 된다면 이것처럼 불효가 어디에 있는가? 세상 앞에 조롱거리가 되지 않는 길은 우리들이 거룩하게 사는 길이다. 나실인으로 사는 길이다. 삼손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거룩하게 살길 원하신 것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사는 것 이전에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 잊지 말아야 한다. 헌데 우리는 예수를 믿는 목적이 내 행복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예수 믿어서 형통하길 원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주실 것이고, 우리들의 삶의 목적은 거룩이다. 내가 거룩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 시대는 거룩이 무너지는 시대이다. (예화)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1년 동안 감옥에 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응답자 고등학생 46%가 할 수 있다고 하였단다. 무슨 말인가?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전과자가 되도 상관없다는 것 아닙니까? 돈만 벌 수 있다면 무슨 짓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룩은 온데 간데 없다. 세상은 그럴 수 있다. 세상은 돈을 위해서 거룩을 버릴 수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면 안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을 포기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짓밟힌다. 세상에 조롱거리가 된다. 우리들의 사명은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자는 것이다.
3.셋째로 절박하게 드리는 삼손의 기도를 생각해 보자. 28절이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이번 한 번만 더 / 한 번만” (1)염치 없어도 우리는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한다. 우리들도 이 기도를 드릴 때가 있다. 한 번만 고쳐 주시면... 이번 한 번만 응답해 주신다면... 이번 일만 해결해 주시면... 급할 때 드리는 기도이다. 살리고 죽이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 한 번만 살려 주신다면... 하나님 이번만 응답해 주신다면...’ 염치 없지만 이 기도를 드려야 한다. 응답은 하나님이 하신다. 우리는 절박함으로 기도할 뿐이다. 아마도 지금 이 기도를 드리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이런 드리지 말고, 평소에 기도하는 인생이 되라.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기도를 드려라. (2)헌데 생각해 보세요.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해 달라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 두 눈을 뽑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해달라는 것이다. 내 원한을 갚아 달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아쉽다. 이 기도보다 삼손은 이렇게 기도했어야 한다. “그동안 잃고 살았던 하나님의 영광을 이번엔 나타내게 해 주소서! 지금까지는 내 즐거움을 위해서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살기 원합니다.”라고 기도를 드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주님을 보세요. 주님은 우리들의 고난을 어떻게 바라보시는가? 병든 나사로 소식을 들으신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요한복음 11장 4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주님은 우리들의 병, 고통, 실패, 승리, 상처 모두를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바꾸실 수 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결정하실 것이다. 허나 우리는 구할 책임이 있다. 우리들이 왜 건강해야 하는가? 왜 돈을 버는가? 내 행복을 위해서인가? 그러면 아무런 영광은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돈을 벌고, 건강해야 하는 이유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함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삼손은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잊고 살았다. 두 눈이 뽑히고 난 뒤에 이 사실을 깨달았다. 목숨을 걸고 마지막으로 기도한다. 이번 한 번만 힘을 달라고... 그래서 자신의 원한을 푸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길 사모하라. 우리 한 번만이라도 거룩한 삶을 살아보자. 한 번만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거룩한 인생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4.결국 삼손은 구원받았다. 다윗과 어깨를 나란히 한 사람이었다. 히브리서 11장 32절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삼손은 기드온, 다윗, 사무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삼손은 구원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 재능, 기회, 시간, 건강, 물질을 갖고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다.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서 살았다. 그러나 두 눈이 뽑히고 난 뒤에 영의 눈이 열렸다. 몸에 힘이 있을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힘을 잃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 그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절실히 찾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것을 의로 여기셔서 다윗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삼손처럼 참으로 염치 없다. 때때로는 우리 삶이 9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트 상황이라도 낙심하지 마라. 하나님 앞에 절박하게 기도하라. ‘이번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라. 주님은 기회를 주실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삶이 삼손처럼 멋진 내용은 아니지만, 염치 없지만, 주님은 기회를 주실 것이다. 주님은 은혜를 주실 것이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