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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리에서 만나자 | 이병수목사 | 2016-1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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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3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28:9-10 제목:갈릴리에서 만나자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시지 않았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시지 않았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찾아 가지도 않았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조롱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내려와 봐라.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느냐”던 사람에게 가서 보란 듯이 살아났음을 보이실만도 한 대 그리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대파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에게 가지도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제자들을 격려하시고 일으켜 주시는 일을 하시다가 가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제자들에게 일러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을까요? 갈릴리는 제자들과 추억이 가득한 곳입니다. 특히 주님과 제자들의 첫 사랑이 있던 곳입니다. 첫 사랑을 다시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에서 하신 대표적인 일은 베드로와 다섯 제자들을 만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셔서 하신 일은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들이 회복해야 할 것들입니다. 오늘 설교의 핵심 키워드는 “예배, 사랑, 성령”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제자들이 되려면 이 세 가지가 회복되어야 한다. 1.첫째로 예배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만난 처음하신 말씀은 “와서 조반을 먹으라”입니다. 식탁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수고했습니다. 얼마나 허기졌겠습니까? 헌데 주님은 그 제자들을 위해서 조반을 준비하시고 계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이 한 말씀을 깊히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 예수님이 진정한 구원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제자들이 누구입니까? 배신자들입니다. 정작 주님 곁을 지켜야 할 자들이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허나 주님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사랑받을 만한 자들에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무지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사랑이었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는 식탁으로의 부르심이 단순히 허기진 배만 채워주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허기지고 외롭고 괴로운 마음과 영혼을 치유해 주시기 위한 부르심이었습니다. 식탁으로의 부르심은 오늘 날로 말하면 예배로의 부르심입니다. 내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시간이 예배시간입니다. 우리는 빈곤국가는 아닙니다. 먹고는 삽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마음이 병들고 영혼이 허기지고 곤고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외롭고 허기진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일은 주님께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예배가 우리들의 허기진 영혼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것은 가장 먼저 예배의 회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목사로서 제가 사랑하는 성도들을 가장 잘 섬기는 것은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준비하고 그 가운데 설교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민현정 권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후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고, 전했습니다. 물론 그 다음은 성령님이 해 주셔야 합니다. 가족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믿어지게 해 주시고, 권사님의 죽음이 결코 허망한 죽음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 주시는 은혜를 성령님께서 부어 주시길 기대하면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전 예배가 우리 성도들을 살리는 능력이라고 믿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일어서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은 아니지만 금요성령집회 시간에 와서 큰 은혜를 받은 분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떠나 살았던 자신을 회개하고 철저히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오전에는 가게문을 닫기로 결심했습니다. 십일조도 드리기로 결단했습니다. 교회 찬양단을 섬기면서 행복해 했습니다. 한 동안 뜨겁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헌데 지금은 예전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유가 뭘까? 말씀의 채움이 없어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본인이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때 성경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헌데 출석하는 교회에는 성경공부가 없다며 아쉬워 했습니다. 보세요. 말씀의 채움이 없고, 예배의 은혜를 맛보지 못하면 과거로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예배만 잘 드려도 살아납니다.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시간이 지나면 수습일 될 것입니다. 정말 걱정은 국민들이 아니라, 성도들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배의 감격을 잃어 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 식어질대로 식어진 것이 걱정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배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것이 정말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것은 낙심한 제자들... 절망한 제자들... 두려워 하는 제자들을 다시 만나 힘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날 우리들이 주님을 만나 힘을 얻는 것이 예배입니다. 주님은 예배로 우리들을 날마다 초대하십니다. 처음에는 내가 예배를 지키지만, 나중에는 예배가 나를 지켜 줄 것입니다. 2.둘째로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조반을 먹고 주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주님이 회복하길 원하는 것은 사랑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제는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촛불집회를 갖았습니다. 이 나라가 큰 위기 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목사로서 저는 우리들의 위기는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 12절에서 예언하셨습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이것이 가장 위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너무 침체되어 있습니다. ‘기도한다고 되냐’는 패배주의가 가득합니다. 설교를 희망고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듣기는 좋은대 실제로 그렇게는 살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큰 불신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희망고문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700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하지만 기도하지 않습니다. 정말 기도하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사랑이 식어진다고 우리 그리스도인마저 사랑이 식어지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 없음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사람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화)마음을 치유하는 이웃들의 가슴 따뜻한 실제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 <연탄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풍금소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저녁 무렵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아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들어 왔다. 초라한 차림의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영철이 주문을 받기 위해 아이들 쪽으로 갔을 때 큰 아이가 동생들에게 물었다. "뭐 시킬까?" "자장면." "나두..." "아저씨, 자장면 두 개 주세요." 영철은 주방에 있는 아내 영선에게 음식을 주문한 후 난로 옆에서 있었다. 그때 아이들의 말소리가 그의 귓가로 들려왔다. "근데 언니는 왜 안 먹어?" "응, 점심 먹은 게 체했나 봐. 아무것도 못 먹겠어." 일곱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말했다. "누나, 그래도 먹어. 얼마나 맛있는데." "누나는 지금 배 아파서 못 먹어.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맛있게 먹어." 큰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남동생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언니... 우리도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같이 저녁두 먹구." 아이의 여동생은 건너편 테이블에서 엄마 아빠랑 저녁을 먹고 있는 제 또래의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영선이 주방에서 급히 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참 동안 아이들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왜? 아는 애들이야?" / "글쎄요. 그 집 애들이 맞는 거 같은데. .."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영선은 아이들에세 다가갔다. "너 혹시 인혜 아니니? 인혜 맞지?"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영선의 갑작스런 물음에 아이는 어리둥절해했다. "엄마 친구야. 나 모르겠니? 영선이 아줌마..." "......" 개나리 같은 노란 얼굴을 서로 바라 볼 뿐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한 동네에 살았었는데, 네가 어릴 때라서 기억이 잘 안 나는 모양이구나. 그나저나 엄마 아빠 없이 어떻게들 사니?" 그녀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어루만지고 있었다. "인정이도 이제 많이 컸구나. 옛날엔 걸음마도 잘 못 하더니..." 그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굳어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거 해다 줄께." 영선은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자장면 세 그릇과 탕수육 한 접시를 내왔다. 아이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그녀는 내내 흐뭇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라. 차 조심하구... 자장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알았지?" "네....." 영선은 문 앞에 서서 아이들이 저만큼 걸어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두운 길을 총총히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처마 끝에 매달려 제 키를 키워 가는 고드름처럼 힘겨워 보였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 영철은 영선에게 물었다. "누구네 집 애들이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는데..." "사실은, 나도 모르는 애들이에요.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음식을 그냥 주면 아이들이 상처받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엄마 친구라고 하면 아이들이 또 올 수도 있고 해서... "그랬군... 그런데 아이들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아이들이 말하는 걸 들었어요. 주방 바로 앞이라 안에까지 다들리던데요." "이름까지 알고 있어서 나는 진짜로 아는 줄 알았지." "오늘이 남동생 생일이었나 봐요. 자기는 먹고 싶어도 참으면서 동생들만 시켜주는 모습이 어찌나 안돼 보이던지..." 영선의 눈에 맺혀 있는 눈물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가난으로 주눅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했던 아내를 보며 영철은 많은 생각을 했다. 그 날 저녁의 감동은 기억 저편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풍금 소리처럼 지금도 그의 마음속 깊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소리 없이 아픔을 감싸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한동대학교 캐치프레이즈는 “공부해서 남주자!!! 남 주려면 최고가 되자!!!”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는 이유가 분명해야 합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가게를 하는 이유는 남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위기는 사랑이 식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인들마저 사랑 없이 살아가는 것이 최대위기입니다. 주님은 사랑이 회복되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으시십시오. 사랑이 식어지는 것을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3.그러려면 셋째로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처음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가? 교회를 세우기 원하셨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비전은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당시 사마리아는 사랑할 수 없는 곳입니다. 헌데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예수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증인은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헌데 이 일을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반드시 성령을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힘을 얻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안됩니다. 성령 없이 신앙생활을 하면 안됩니다. 성령 없이 믿으면 힘듭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을 때는 교회 오는 것도 힘듭니다. 찬송하는 것도 힘이 안납니다. 말씀이 안 들립니다. 은혜 받은 적이 언제입니까? 설교를 듣다가 깊은 은혜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기도할 때 가슴을 치며 울어본 적 있습니까? 성경을 정말 진지하게 읽어 보셨습니까? 성경을 깊히 생각해 보셨습니까? 성경을 읽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시면 죄송하지만, 불경을 읽지 않고 부처 앞에 나가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찬송하면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린 적이 있습니까? 성령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우리들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예배가 즐거워집니다. 성령이 임하면 순종이 쉬워집니다. 성령이 임하면 사랑하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정말 위기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없이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당부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고 그리고 사랑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예배, 사랑, 성령 이 세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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