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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뜻이다 뭐가 더 필요한가? | 이병수목사 | 2016-11-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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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0일 추수감사주일 예배설교 성경:살전 5:16-18 제목:하나님의 뜻이다, 뭐가 더 필요한가? 일주일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뚜렷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한 가지 이유가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 같았습니다. 특히나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추수감사주일 설교 본문으로 미리 정해 놓았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말씀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응 이 말씀! 다 아는 말씀인데...’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반감을 갖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나? 어떻게 항상 기뻐하나? 쉬지말고 기도하나? 범사에 감사하라니 이게 가능해? 기쁜 일이 없는데 어떻게 기뻐해? 감사한 일이 있어야 감사하지? 하는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말씀은 말씀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하실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 스스로에게 묻고 물었습니다. “난 기쁜가? 난 행복한가? 모든 것이 감사한가?” 전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돌아보면 주님의 은혜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제가 절 잘 아는데 제 실력으로 이만큼 살 수 있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주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아쉽고 속상하고, 원망스럽기 보다 감사하고, 이만하면 족하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려는 꿈이 있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감사할 것을 찾아보니 수 없이 많았습니다. 전 정말 오늘 말씀을 믿습니다. 전 이 말씀을 믿는데 과연 우리 성도들은 믿을까? 이 물음 앞에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상합니다. 성도들에게 감사하고, 기쁜 이야기를 듣습니다. 헌데 마음에 묵직하게 남아 있는 것은 성도들의 아픈 이야기들입니다. 하나님께 실망했다는 분이 있습니다. / 하나님에 대해서 분노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 하나님께 어떤 기대감도 없는 분이 있습니다. / 신앙의 열심히 회복되지 않는다고 힘들어 하는 분도 있습니다. 과연 뭐가 문제일까요? 누구의 문제일까요? (예화)마리아에게 천사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마리아야 놀라지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럼에도 마리아는 대답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마리아가 이해가 되었겠습니까?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가 순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말씀 앞에 예!! 하고 항복한 것입니다. (예화)믿음으로 살아가신 분들을 보면... 왜 갈등이 없었을까요? 왜 힘들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갈등의 끝에서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면 뭐가 더 필요한가?” 결국 순종으로 매듭을 지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뜻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순종 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리아처럼 우리가 주의 종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순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보세요.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뭐가 더 필요합니까? 이 세 가지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하라고 일일이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대원칙을 주십니다. 삶의 태도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일을 만나든지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돌이켜 보면... 언제가 가장 기뻤던가? (1)성령 받았을 때 행복했습니다. 성령님을 체험했을 때처럼 행복했던 적도 없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을 체험했을 때 너무나 기뻤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믿어질 때 행복했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고 너무나 슬펐는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의 모든 죄를 씻어 주셨다는 사실이 믿어질 때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기도가 응답이 될 때, 말씀을 듣는데 믿어지고, 내 속에서 힘이 될 때 그 기쁨이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데살로니가 교회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살전 1:4-6절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어떻게 기쁨을 누렸는가?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누가 역사해 주셨다구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믿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많은 환난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성령의 기쁨으로 넉넉히 이기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형편을 몰라서 항상 기뻐하라고 했을까요? 우리보다도 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성령의 기쁨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자 어떤 상황에서도 성도들은 행복해 했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허허실실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제 무한도전을 보면서 기뻤습니다. 무한도전에서는 한국민족을 위해서 헌신한 역사적인 인물들을 집중 조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조선 말기 애국애족한 인물들을 소개할 때 백범 김구, 윤동주시인, 안중근의사, 유관순열사를 소개했습니다. 헌데 이들은 나라를 위해서 순교한 사람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 땅에는 복음이 1884년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에 한국 땅에 복음이 이후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서 순교의 제물이 되는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헌데 생각해 보세요. 이들이 나라를 위해서 순교하면서 슬펐을까요? 원망스러웠을까요? 후회했을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기뻤습니다. 이들은 감사했습니다. 왜냐면 성령으로 인한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사랑에 빠지면 행복합니다. 사랑이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보세요.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얻는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기쁨을 잃어버린 것은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행복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한 우리는 행복합니다. 성령받기를 사모하십시오. 성령 받으면 정말 행복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기쁨입니다. (예화)사무엘상을 보면 쫓겨 다니는 다윗과 칼자루를 쥐고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니면 사울의 상대에 관한 흥미로운 본문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무엘상 16장 13,14절인데요. “사무엘이 기름 뿔 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다윗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 라마로 가니라.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다윗은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으나 반대로 사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했습니다. 여호와의 영에 감동된 다윗은 시편 57편에서 노래했듯이 어떤 상황에서도 빼앗기지 않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라고 하면서 마음이 분노와 쓴물이 나올 때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보세요. 다윗이 눌렸나요? 절망했나요? 아니예요. 다윗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인해서 새벽을 깨웠어요. 주님께 감사하며 찬송했어요. 그러나 사울을 보세요.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권력자 사울은 성령이 떠나자 악령이 그를 지배했어요. 그로 인해서 번뇌에 싸여 고통받았어요. 전혀 행복하지 않았아요. 보세요. 사울은 다 갖은 자예요. 그런데 전혀 기쁘지 않았어요.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자 마음에 번뇌가 가득했어요. 음악을 들어도, 여행을 가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쇼핑을 즐겨도 마음에 기쁨이 없는 거예요.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그래서 기쁜 거예요. 그래서 감사한 거예요. (적용)한 번 물어보세요? 나는 행복한가? 나는 진짜 행복한가? 두 번째 질문 내가 정말 행복하다면 그 행복은 주님으로 인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인가? 어떠세요? 첫 번째 질문에서부터 막히세요? 난 행복하지 않아? 그러면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뭐예요? 우리는 주님 때문에 행복해야 합니다. (2)우리들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최종승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기쁨은 언제 누리는지 아십니까? 고난 중에 누리는 것입니다. 늘 좋은 일만 일어나면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랍 속담에 “햇빛만 비치는 땅은 사막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땅은 계속해서 햇빛만이 비치는 땅이 아닙니다. 그런 땅은 금방 사막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좋은 땅은 항상 비와 바람 그리고 추위가 있는 땅입니다. 항상 어려움이 없고 즐거움만 있는 인생은 금방 무너지고 맙니다. 인생에 어려움 없는 즐거움과 재미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입니다. 성공하는 인생은 항상 어려움이 있는 인생입니다. 어려움이 있기에 성공을 하는 겁니다. 이 어려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이 어려움을 통해 더 강해지고 이 어려움을 통해 겸손함을 배우고 이 어려움을 통해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성경에서 기쁨은 고난 중에 맛보는 기쁨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세상적으로 볼 때 바울은 늘 당하는 쪽입니다. 가난한 자 같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습니다. 그러나 항상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만족합니다.
(예화)예수 믿기 시작한 사업가가 있습니다. 세례도 받고, 집사직분도 얻고 열심히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헌데 사업에 어려움이 왔습니다. 목사님은 사업에 어려움으로 인해서 믿음을 잃으면 어떻게 하나 염려했습니다. 혹 “예수를 믿기 시작했더니 어려움이 생겼다”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습니다. 헌데 “예수 믿었더니 어려움이 왔다?가 아니라 예수를 믿어서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다”고 고백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아닐까요? 고난을 피해 갈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헌데 어떤 사람들은 “교회 나가면서부터 이런 어려움이 왔다고... 에수를 믿어도 좋은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어서 고난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의지할 분이 있어서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것입니다. 고난이 있었지만, 예수 때문에 견딜 수 있었고, 의지할 수 있었고, 기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감사하다.” 이게 진짜 믿음 아닙니까? 기억하세요. 하나님 때문에 고난이 온 것 아닙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어서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환난이 와도 태도가 다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4절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것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연단된 인격은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환난이 오면 기뻐하는 이유가 뭐예? 환난이 오면 주님과 함께 인내하고, 인내하다보면 연단된 인격을 갖게 되고, 결국은 믿음으로 소망을 갖기에 기쁘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환경이 벼랑으로 우리를 몰아갈 수 있다. 그 때 벼랑 끝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벼랑 끝에서 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벼랑 밑으로 추락하겠습니까? 절망하고, 원망하고 포기하겠는가? 아니면 주님을 믿고 날아 오르겠습니까? 주님에게 맡길 기회가 되게 하시겠습니까? 끝까지 가봐야 합니다. 지금 당장만 보지 마세요. 숏 타임으로 보지 마세요. 롱타임으로 보셔야 합니다. 상황이 문제 아닙니다. 상황은 어짜피 왔다 갔다 하지 않습니까? 한결 같은 환경은 없습니다. 돈 좀 없으면 어떻습니까? 절제하며 살면 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예화)수능 전날 네 식구 둘러 앉아 서로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하며 맡길 수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더 뭐가 필요합니까?
온도계처럼 살지 말고, 온도 조절기처럼 사십시오. 온도계처럼 환경의 온도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환경의 온도가 영하 20도면 내 마음의 온도도 영하 20도입니다. 마음이 얼마나 찬지 모릅니다. 조금 힘들면 절망합니다. 환경의 온도가 영상 20도면 내 마음의 온도도 20도가 되어 좋아라 합니다. 열심히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환경온도가 떨어지면... 또 마음의 온도가 내려갑니다. 업 다운이 심합니다. 그러나 온도조절기처럼 사는 사람들은 환경의 온도가 어떠하든지 마음과 믿음의 온도를 맞추고 사는 것입니다. 온도를 맞추려면 기름 값은 들겠지만, 그래도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인해서 기대합니다. 좀 힘들면 더 기도의 불을 때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을 더 붓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심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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